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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도없이, 리뷰, 2020의 유아인, 스포있음

소소리-바람 2020. 10. 24. 13:58

 가끔 말이 생각을 결정한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말로 나와버린 어떤 사실이 사실이 되어버리는 경우. 누군가 장난기 섞인 말투로 물었다. "이상형이 뭐예요?" 나는 더 가볍게 대답한다 "유아인?" 그저 버닝을 재밌게 봤다 정도의 사실이 손에 잡히는 실체일 뿐 별 관심있는 대상은 아니었고 그래서 그 이후부터 벌어지게 된 나의 그에 대한 관심이 사실은 내 발언을 책임지기 위한 행동들인 것은 아닐까에 고민하며 한편으로는 그의 새 영화를 개봉일에 맞추어 보고 싶은 꿈을꿨다. 그러다 현실적 벽에 부딪혀 포기상태였는데 어제는 굳이 영화를 영화관에 가서 봄으로써 그 말의 증거를 하나 늘리고야 말았다.
영화는 소리도 없이 사는 남자 유아인의 일상을 좇는 일로 시작되어 끝난다. 끝까지 소리가 없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유일한 스포일까. 한마디 말이라고 실수로 흘러내 버린다든가, 아니면 신파적 분위기로 과거를 회상하며 소리도 없이 살게 된 구구절절한 사연을 읊어줄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이 게으르고 의뭉스러운 감독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끝까지 소리도 없는 채로 유아인을 방치한다.
유아인은 배역에 맞게 살을 좀 찌웠고 버닝에서 그랬듯 극 내내 열심히 달린다. 시골길을 달리고 도시를 달리고 버스타고 달리고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깊은 시골 작은 마을의 외딴집. 그곳 분위기를 한번에 바꾸어놓는 여자 아이 배초희. 초희는 선물처럼 등장해서 집안 분위기를 환하게 바꾸어 놓고 유괴범과 동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유괴범임을 알면서도 짐짓 침착한 체, 마음을 사로잡는 연기는 일품이다. 결국 우리의 착한 얼떨결의 유괴범은 초희를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을까?
아이에게만 친절한 이 사람, 도대체 뭘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소리도 없이 끝난 이 영화... 머릿속에서도 소리도 없이 사라질듯하다.


(핸드폰으로 밤에 자다깨서 다 써놓은 리뷰가 사라졌다.. 업로드하기 전에 다시 잠들어 버린듯.. 다시 복기를 했지만 그때의 느낌은 나지 않는다 흑흑. 됐다 이만. )


소리도없이 사라지겠거니 했던 영화는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써 나의 판단이 틀렸음을 증명해내었다. 그가 흥행하지 않을 것이 뻔한 영화에 출연했고, 그 영화에서 본 것은 "사용당할 준비"였고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잘 해낼 것 같은 영화에서 충분한 몫을 해냄으로써 오래 "살아지게" 되었다.

2021 유아인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후보는 정상회담 정우성,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황정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정재, 남산의 부장들 이병헌
누가 받아도 논란이 없을 만큼 쟁쟁한 프로들이었고
상을 받게 된
유아인은 또 한 번 결정적 수상소감을 남겼다.

" 안그래도 최근에 이병헌과 무대공포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마주하고 있는 관객과 배우에게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무대를 오를 때마다 무겁다고. (떨립니다) 참, 못했던 그 동안의 시간들을 돌아보고 위로도 되었습니다. 많은 선배님들께 많은 것들을 배웠고 배우로서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제 앞을 지켜주신 분들이라고 생각하고 (항상)감사합니다. 작품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소리도 없이는) 저예산에 독특한 스타일에 희한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영화이지요. 제가 작품을 해나갈수록 어떤 작품을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이 커져갑니다. 200억 블록퍼스트 작품이 들어왔는데, 이거 하면 신인상 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하하. 저 또 이러고 있네요... 저 아니면 누가 웃겨요, 제가 해야죠, 또.. 흐흐) 홍의정 감독님이 주신 제안은 배우로서의 처음, 시작을 상기하게 하는 작품이었어요. 상당히 저예산으로 진행되다보니 현장에서도 고생할 것 같고 영화의 퀄리티가 보장될 것인가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제가 그 작업에 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새로움이었고, 홍의정 감독님이 가진 윤리의식이었습니다. 영화라는 것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 아는 감독과 함께 작품을 하게 되어 너무 기쁘고, 저는 어디에서든지
어떤 분들에게든지 "사용당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마음껏 가져다 쓰십시오. 배우로서 살아가겠습니다. 오늘 이 상 감사합니다"

덧붙여 이 영화의 의뭉스러운 감독
"홍의정"은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상이 내가 느낀 영화의 가치를 결정짓지는 않는다.
모두에게 좋은 음식이 나에겐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도 있듯이, 그러나 더없이 충분한 영화이고 충분한 배우였다.
이런 독특한 영화가 많이 나와서 자주 왈가왈부할 수 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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